나는 나를 돌보는 법을 몰랐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땐 그것이 너무 당연했다. 마치 살아가는 법만 배우고, ‘나를 대하는 법’은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감정이 힘들거나 지칠 때 나는 술을 마셨다. 이기지도 못하는 술을 진탕 마셔댔고, 술 뒤에 숨어서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분노가 나오고, 억눌린 감정이 터져 나왔고, 그러면서도 멈추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나’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왜 나를 돌보지 못했을까
예전의 나는 감정이 올라와도 그것을 다 표현하지 못했다. 거절 한 마디도 쉽게 하지 못했고, 착한 사람이라는 틀에 갇혀 살았다. 전화로 부탁을 받으면 거절하지 못할까 봐 문자를 택했고, 감정을 꾹꾹 눌러 담으며 살았다. 그렇게 쌓인 감정은 결국 나를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터져 나왔다. 한 번은 친구와 웃으며 바닷가를 걷다가 갑자기 가슴이 조여오며 눈물이 멈추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어떤 이유였는지 설명할 수도 없었다. 그저 꺼억꺼억 울 뿐이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감정 상태를 ‘정서 억압’이라고 부른다.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내면에 억눌러두면, 어느 날 갑자기 몸과 행동으로 터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자주 ‘자기 파괴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 술, 폭식, 분노, 또는 완전한 무기력으로..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르다
지금의 나는 술을 끊었다. 가장 먼저 내가 선택한 변화였다. 술 없이도 감정을 마주 볼 수 있게 되었고, 정신이 또렷한 상태에서 나를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명상, 알아차림, 고요한 시간, 루틴. 그 모든 것이 나를 조금씩 바꿔놓았다. 특히 확언과 감사일기, 꿈 100번 말하기 같은 루틴들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나를 돌보는 방식이 되었다. 그 속에서 나는 자존감을 회복했고, 예전보다 훨씬 더 ‘나’를 아껴주게 되었다. 나는 늘 귀가 얇고 남의 눈치를 많이 봤다. 하지만 지금은 그 감정이 올라와도 의식적으로 바라보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선택하려고 노력한다. 자기 돌봄이라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조용한 공간에서 나에게 집중하고, 지금 내가 어떤 감정인지 묻고, 그 감정을 억지로 없애려 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 그렇게 나는 나와 조금 더 가까워지고 있다.
감정이 무너질 때, 나는 이렇게 회복한다
요즘은 감정이 예전처럼 극적으로 무너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힘든 날은 있다. 그럴 땐 나는 푹 잠을 자거나, 안 보던 드라마를 몰아보거나, 집을 청소하거나, 반신욕을 하면서 땀을 쭉 빼며 감정을 정리한다. 그 순간 ‘나를 돌보고 있다’는 감각은 단순히 몸의 피로를 푸는 것을 넘어선다. 정서적으로도 '괜찮다'라는 신호를 내게 보내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활동은 정신과적 회복 모델에서도 ‘자기 위로 기술’이라 불리며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습관으로 권장된다. 작은 정리, 휴식, 위로의 행위들이 감정을 안정시키고 삶의 방향을 다시 잡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제는 조금씩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그런 내가 그냥 나인 줄 알았다. 하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감정을 들여다보면서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에고'라는 가면이 있었고, 그 뒤에는 진짜 내가 있었다는 것을. 나는 여전히 서툴고 완벽하지 않지만, 조금 더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이어리에 적어두었던 글귀가 떠오른다. “시간이 서로 다른 사람들 속에서 각자의 속도로 흘러간다.” 그 말처럼, 나도 나의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것을 믿고 싶다.
예전의 나에게, 혹은 지금 지쳐 있는 당신에게
이 글을 쓰며 상상해 본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따뜻하게 말을 건넨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너무 멀리 있는 것만 보고 애쓰지 말아라. 삶의 대부분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온다. 무에서 와서 무로 간다고 해도, 그 사이의 '나를 사랑하는 연습'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 때로는 고통이 우리를 깨우고, 때로는 회피가 우리를 성장시킨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돌보겠다고 결심하는 그 순간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부터, 아주 작게 시작해도 충분하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 돌봄(self-care)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다. 정서적 안정, 에너지 회복, 그리고 나에 대한 존중을 실천하는 일이다. 작은 일부터 시작할 수 있다. 하루에 한 번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나의 감정을 체크해 보는 것, 마음이 무너질 때 ‘지금 이 감정도 지나간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것, 루틴 속에 나만을 위한 시간을 넣어주는 것도 자기 돌봄의 한 방식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충분히 잘하고 있고, 이제는 스스로를 조금 더 따뜻하게 대해도 좋다. 그게 진짜 회복의 시작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