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처음 만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도메인을 구입하고, 첫 화면을 열어봤다.
그런데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았다.
분명 처음인데, 이 화면을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처음 본 화면인데, 익숙했다.
이상하게... 참 이상하게 익숙했다.
처음에는 그냥 '기분 탓이겠지' 하고 넘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 익숙한 기분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창을 하나씩 닫고 마지막에 남은 내 블로그 화면.
그 공간 안에 모여있는 사진과 글들이
마치 ‘이미 오래전부터 나의 것이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이런 느낌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얼마 전, 지인과 이야기하던 중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눈을 감고 있지도 않았고, 꿈을 꾸는 것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머릿속에 이상한 영상이 펼쳐졌다.
나는 꿈속이 아닌, 깨어 있는 현실에서 그 장면을 경험했다.
하지만 이와 유사한 느낌은 자각몽에서도 자주 나타난다고 한다.
현실인지 상상인지, 경계가 사라지는 그 순간의 감각이랄까.
끝이 어디 인지도 모를 아주 넓은, 그리고 깜깜한 공간.
벽돌처럼 생긴 영상 블록이 수백, 아니 수천 개가
한 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나는 그 앞에 서 있었다.
그 블록 안에는
내가 어릴 적이었을 때의 나,
할머니가 된 나,
그리고 지금의 내가 아닌, 또 다른 모습의 나도 있었다.
흰색 가운을 입고 있어서 의사처럼 보이기도 했고, 다른 직업을 가진 나 같기도 했다.
그것 말고도 내가 겪어보지 못한 수많은 상황의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내가 그 블록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해맑게 웃고 있는 모습도, 서럽게 울고 있는 모습도 있었다.
그 블록 하나하나는 모두 다른 영상이었다.
정지된 이미지가 아니라, 실제로 움직이는 영상이었다.
나는 그 수많은 영상 블록 중 하나를 집어 들었고,
그 순간 너무 놀랐다. 그리고 사라졌다.
그것이 꿈도 아니고, 눈도 뜨고 있었는데
너무 생생했다.
아직도 그 장면이 너무도 선명하다.
처음에는 ‘그냥 상상인가?’ 싶었다.
근데…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혹시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 장면들이
이미 오래전, 내가 어딘가에서 ‘봤던’ 것이라면?
도대체 그 화면은 왜 나한테 익숙했을까.
나는 이 블로그를 처음 만들었고,
다른 사람의 블로그를 둘러본 적도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생생하게
"이 장면 분명히 언젠가 있었던 장면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걸까?
이상하지? 정신과 약 이라도 먹어야 하나??
웃길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게 착각인지, 무의식의 기억인지.
아니면… 정말 내가 이미 지나온 또 다른 세계의 일부인지.
사람들은 말한다.
처음 겪는 일인데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질 때,
그것을 ‘기시감’(데자뷔)이라고 부른다.
근데 그 말로 설명하기엔…
이 감각은 조금 더 깊고, 조금 더 묘하다.
이게 나만의 착각이든,
아니면 정말 무엇인가의 조각이든
이 경험만큼은 오래 기억하고 싶다.
지금 내가 시작하려는 이 블로그,
어쩌면 이미 오래전부터
나의 한 조각 속 어딘가에 존재해 왔던 것이 아닐까?
이 감각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아직도 명확히는 모르겠다.
그런데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 낯선 익숙함은, 내 마음 어딘가를 두드린다.
마치 내가 지금 여기 있어야만 했던 것처럼, 이미 오래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처음 시작하는 블로그지만, 그 시작이 단순히 '처음' 같지만은 않다.
이제부터 내가 쓰게 될 이야기들,
그 속에는 어쩌면 이미 존재했던 나의 조각들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냥 웃어넘길 경험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느낌을 놓치고 싶지 않다.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올 때,
그걸 기록하고, 되새기고, 나만의 의미로 남겨두는 것.
그게 바로 블로그의 시작일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또 하나,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수없이 많은 장면을 지나온다.
하지만 어떤 장면은 이유 없이 마음속에 강하게 남는다.
그것이 실제로 본 것인지, 꿈속에서 본 것인지조차 불분명한데도
그 장면은 뇌리에 강하게 각인된다.
지금 이 블로그라는 공간이 나에게 그런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처음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익숙한 이 느낌은
어쩌면 '운명'이라는 단어로밖에 설명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그 운명의 흐름 위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시작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무언가를 따라 걷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처음 같지 않은 처음,
익숙한 낯섦 속에서 시작하는 나만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