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가 철학 시리즈 | 요가수트라:마음을 잠재우는 철학 (5편)
감각도 생각도 모두 멈춘 그 자리에는 무엇이 있을까?
요가는 몸의 유연함이나 근육의 움직임을 넘어서,
의식의 가장 깊은 자리에 이르는 여정이다.
그 여정의 끝,
《요가수트라》는사마디(samādhi)라 부른다.
나는 한 번이라도,
‘나’라는 감각마저 사라진 고요를 느껴본 적 있는가?
모든 감각이 멈춘 순간,
모든 이름이 사라진 공간,
거기엔 "나도 없고, 대신 모든 것이 있는" 이상한 평온이 있다.
여기서 ‘나도 없다’는 말은,
우리가 평소에 느끼는 ‘나’—생각하고 판단하는 자아, 역할, 감정—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것은 혼란스럽거나 공허하지 않다.
오히려 ‘나’라는 경계가 사라지자,
나를 둘러싼 모든 것과 하나 된 듯한 깊은 충만함과 평온이 찾아온다.
아무 생각도, 설명도 없는데, 이상하리만치 자유롭고 깨어 있는 상태.
그것이 요가가 말하는 ‘사마디’의 고요다.
🧘사마디란 무엇인가 –‘관찰자’마저 사라지는 침묵
《요가수트라》 말한다.
वितर्कविचारानन्दास्मितारूपानुगमात्सम्प्रज्ञातः
vitarka-vicāra-ānanda-asmita-rūpānugamāt saṁprajñātaḥ
(비타르카-비차라-아난다-아스미타-루파-아누가맛 삼프라즈냐타하)
“사마디에는 감각적 사고, 미세한 사유, 평온한 기쁨, 자아의식까지 단계적으로 작용한다.”
요가는 감정과 생각에 휘둘리는 작은 자아(에고)에서 벗어나,
그 모든 것을 바라보는 관찰자(진짜 자아)로 깨어나는 데서 시작된다.
‘관찰하는 나’가 깨어나는 순간, 비로소 요가가 시작된다.
그러나 《요가 수트라》《요가수트라》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 ‘관찰자’조차도 사라지는 자리—
마음도, 감정도, ‘나’라는 자각도 모두 내려놓는 침묵.
그곳이 바로 사마디다.
이는 감각에서 시작해,
생각 → 기쁨 → 자의식까지
하나씩 내려놓으며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는 여정이다.
각 단계를 지날 때마다
‘나’라는 존재감이 점점 더 희미해지고,
마침내 아무것도 붙잡지 않은 완전한 고요에 이르면
그제야 드러나는 아무것도 없지만 모든 것이 있는 의식.
《요가수트라》는
“씨앗 없는 사마디(nirbīja samādhi)”라 부른다.
더는 새로운 생각이나 감정조차 싹틀 수 없는,
완전한 침묵과 자유의 자리다.
🧘 사마디는 멀리 있는가 – 일상에서 스치는 초월
그렇다면, 이런 사마디의 상태는
반드시 오랜 명상이나 깊은 수행 끝에서만 만날 수 있는 걸까?
꼭 그렇지는 않다.
때때로 삶이 우리를
뜻밖의 순간에 사마디처럼 데려가기도 한다.
숨이 멎을 듯한 깊은 자연 앞에 섰을 때
말도 생각도 멈춘 채 무언가에 완전히 몰입하고 있을 때
이유도 모르고, 감정이 다 녹아내려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릴 때
그 순간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지만,
오히려 더 깊이 깨어 있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완전한 자유를 느끼게 된다.
그건 어쩌면,
우연히 스쳐 간 사마디의 파편일지도 모른다.
요가란 바로,
그런 우연한 한순간을
반복 가능하고 필연적인 자각의 길로 이끄는 수련이다.
🧘 더 이상 바라보는 ‘나’도 없다
요가는 단순히 몸의 움직임을 익히는 훈련이 아니다.
마음과 자아, ‘나’라는 감각을 다루는 깊은 의식의 기술이다.
그 수련이 깊어질수록
마음은 점점 더 고요해지고,
마침내 내면을 바라보던 ‘관찰하는 나’조차 사라진다.
그 순간에는
“나는 지금 고요하다”는 생각조차 없다.
생각도 멈추고, 말도 멈추고,
그 어떤 설명도 필요 없는 상태.
그저 ‘존재하고 있음’만이 남는다.
이 고요 속에서는
더 이상 묻거나 확인할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이 이미 거기 있는 듯, 스스로 답이 된다.
요가의 여정, 의식의 여정
요가는 단순한 동작이나 수행을 넘어,
‘나’로 돌아가는 의식의 여정이다
🧘《요가수트라》에서는 이 여정을 이렇게 8단계로 나눈다:
야마 – 타인과의 조화
니야마 – 나와의 조화
아사나 – 몸의 자리에 머무름
프라나야마 – 숨과 연결
프라티 야하라감각에서 물러남
다라나 – 집중
디야나 – 명상
사마디 – 나와 우주의 경계가 사라지는 초월 상태
이것이 바로
‘요가’가 단지 몸을 움직이는 운동이 아니라,
의식의 층을 하나씩 내려가며 본래의 나에게 도달하는 철학적 수행인 이유이다.
💭 사마디의 끝에서, 당신에게 묻는다.
생각이 모두 멈춘다면, 나는 누구인가?
감정도, 관찰자도 사라졌을 때,
내 안에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무엇인가?
🔁 처음부터 다시 읽기:
《마음은 내가 아니라면, 나는 누구인가?》부터 읽어보기
📖 다음 여정으로 이어집니다:
전쟁터에서 요가를 말하는 이유 – 삶과 고통, 수행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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