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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꾸는 고전/내 안의 요가 철학

나는 마음을 느끼는 자일까, 바라보는 자일까?

by romanticwife 2025.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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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잠재우는 요가마음을 잠재우는 요가마음을 잠재우는 요가
마음을 잠재우는 요

📘 요가 철학 시리즈 | 요가수트라:마음을 잠재우는 철학 (3편)

 

나는 생각을 멈출 수 없을지라도, 그 생각을 바라보는 내가 존재할 수는 있을까?

 

《요가수트라》절은 이렇게 말한다:

 

तदा दृष्टुः स्वरूपेऽवस्थानम् 
Tadā draṣṭuḥ svarūpe’vasthānam
( 따다 드라쉬뚜흐 스바루뻬 아바스따남 )

“그때, 관찰자는 자신의 본성에 머문다.”

 

여기서 말하는 '그때(tadā)'는 언제인가? 바로 앞 구절인 1.2절에서 설명한 것처럼, 마음의 파동(vṛtti)이 잠잠해지고 (nirodha) 고요해졌을 때이다. 그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생각과 감정에 휘둘리는 존재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관찰자로 존재하게 된다.

 

관찰자(draṣṭṛ)’는 단순히 눈으로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선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생각하는 나’, ‘느끼는 나보다 더 근원적인 자리, 모든 경험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의식의 중심을 의미한다. 이는 나의 존재 자체를 가리키는 개념이며, 요가 철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깨달음 중 하나다.

 

우리는 평소 나는 슬퍼”, “나는 불안해”, “나는 화가 나라는 식으로 생각과 감정을 곧잘 라고 말한다. 하지만 요가 철학은 말한다. 그 슬픔은 너 안에서 일어난 하나의 파동일 뿐이며, 그 감정은 네가 아니다. 너는 그것을 느끼는 자이지, 그 자체는 아니다.

 

관찰자는 그 모든 것을 바라보는 자리다. 관찰자는 판단하지 않고, 개입하지 않고, 그저 인식한다. 마치 잔잔한 호수가 하늘과 구름을 비추듯, 의식의 거울로서 세상의 움직임을 그저 담아낸다.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 요가 수련의 목적이며, 요가수트라에서는 그 상태를 ‘svarūpa(스바루빠)(본래의 모습)’라고 부른다.

 

‘svarūpa’는 가짜 자아나 사회적 정체성이 아닌, 파동이 멈췄을 때 드러나는 고요하고 중심에 있는 나를 말한다. 이 상태는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었지만 잊고 지냈던 자리에 돌아가는 일이다.

 

본래의 모습본래의 모습본래의 모습
본래의 모습

 

🧘 보이지 않는 자아는 언제부터 있었을까?

 

진짜 자아는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항상 존재해 온 의식의 중심이다. 요가 철학에서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 태아일 때부터 이 관찰자는 존재한다고 본다. 마치 호수 아래 고요한 바닥이 원래부터 있었듯이, 감정과 생각이라는 물결이 일어나기 전부터 그 바닥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자아를 기억하지 못할까?

그건 우리가 살아오며 경험하고 반응하고, 감정과 생각의 흐름에 빠져 지내는 동안 그 자아를 덮어버리는 파동들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가는 이걸 되찾기 위한 길, 이미 존재하지만 망각된 나를 다시 자각해 가는 수련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진짜 자아는 자라나지 않느냐는 질문이 생긴다. 요가 철학의 대답은 이렇다:

 

 자아 자체는 자라지 않는다. 자라는 것은 오직 자각하는 능력이다.

 

, 자아는 원래 거기 있었고, 내가 그것을 볼 수 있는 힘, 깨달을 수 있는 힘이 성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자아를 끝내 자각하지 못하고 삶을 마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요가수트라는 그것을 불행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당신 안의 중심을 알며 살고 있는가?

 

태아태아태아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하는 관찰자=자아

자아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잊고 살뿐이다.. 요가는 그걸 다시 기억하고 느끼는 길을 안내하는 도구다.

 

그리고 이 관찰자는 단지 바라보기만 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다. 요가 철학에서 말하는 관찰자는 순수의식(puruṣa)’ 그 자체이며, 모든 판단과 감정 이전에 존재하는 완전한 고요의 중심이다. 이 자리로 돌아갈수록, 우리는 삶을 분명히 보고 흔들림 없이 선택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 선택이 모두 성공이나 깨달음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왜냐하면 깨달음이라는 것도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중심을 회복하고 세상 속에서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고, 어떤 이는 조용한 평화 속으로 나아간다. 중요한 것은 삶의 방향이 아니라, 그 방향을 '어디서' 바라보고 있느냐이다.

 

이 말은 곧, 어떤 길을 가느냐보다도 그 길을 선택하는 내 안의 상태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같은 일을 해도, 불안과 결핍에서 출발한 선택과 고요한 중심에서의 선택은 완전히 다르다. 요가는 무엇을 하느냐보다, 그 행위가 어디서 비롯되었느냐, 즉 내가 그것을 두려움에서 택했는가, 자각 속에서 택했는가를 끊임없이 묻는다.

 

결국 요가는 삶의 방향을 판단하지 않는다. 다만 말한다 중심을 잃지 않은 선택이야말로 가장 깊고 진실된 선택이라고.

 

물론, 현실이 너무 막막하고 생존이 급박할 때,

'중심에서 바라보라'는 말은 허무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요가는 말한다.

바로 그런 혼란 속에서도 단 한순간이라도 중심을 기억할 수 있다면,

그 기억이 삶 전체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중심은 지금의 고통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고통을 휘감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힘을 키워준다.

 

그리고 그 힘의 시작은 거창한 깨달음이 아니라, 아주 작은 순간의 '알아차림'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 내가 많이 불안하구나", "지금 이 감정이 올라오고 있구나" 하고

한 발짝 떨어져서 나를 바라보는 그 찰나. 그게 바로 자각의 시작이다.

 

요가는 바로 그 작고 조용한 순간을 믿는다.

지금 중심을 완벽하게 회복하지 못하더라도,

그 자리를 기억하는 단 한순간이 우리를 다시 길 위에 세운다.

 

, 요가가 말하는 진짜 자각이란

 

나는 지금 어떤 감정 속에 있든, 그 감정이 내가 아님을 알고, 중심의 자리에서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가?”

 

바로 그 물음 앞에 서는 것이다.

 

 

 

 

🧘 나의 중심은 언제 알게 될까?

요가수트라는 말하지 않는다. “중심은 이런 순간에 반드시 보인다라고. 왜냐하면 그 중심은  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자각하는 순간의 깊이와 준비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명상 중 문득,

어떤 사람은 고통의 한복판에서 갑자기,

어떤 사람은 삶에 수없이 흔들리다가, 어느 날 문득 조용히

그 중심을 느끼게된다.

 

그 순간은 마치 이렇다:

 

 “생각은 여전히 있지만, 그 생각을 따라가지 않는 내가 있었다.”

 “감정은 일어나지만, 내가 그것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때 우리는 처음으로 나는 내 생각도, 감정도 아니구나를 체험한다.

그리고 그 순간을 지나면 삶이 변한다기보다, 삶을 대하는 중심의 태도가 달라진다.

 

그 중심을 자각하는 길에는 빠른 길도, 정답도 없다.

하지만 요가는 말한다:

 

그 자리는 당신 안에 늘 있었고, 지금도 거기 있다.” 

🧘삶의 목표는 ‘처음의 나’로 돌아가는 일일까?

요가 철학은 말한다.

삶의 목표는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는 본래의 나를 기억해 내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오며 수많은 감정, 상처, 사회적 역할 위에 진짜 나를 덮어놓고 살았다.

그래서 고요한 마음이 생소하게 느껴지고, 나를 지켜보는 중심이 멀게만 느껴진다.

 

요가는 그것을 다시 기억하고 돌아가는 길이다.

 

하지만 이건 단순히 철학적인 사색이 아니라,

삶을 더 깊고 충만하게 살아가기 위한 바탕이다.

 

누군가는 그 중심을 회복하고 세상 속에서 창조하며 살아가고,

누군가는 그것을 느낀 뒤 단순한 삶으로 나아간다.

표현은 달라도, 중심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 같은 길 위에 있다.

 

결국 우리는 처음의 나로 돌아가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안에 중심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사는 것일지 모른다.

 

“길은 내가 만든 게 아니라,

내 안에 원래 있었고, 나는 그 길을 스스로 기억해내는 중이다.”

 

침묵의 끝에서 침묵의 끝에서 침묵의 끝에서
침묵의 끝에서

 

 

💭 침묵 끝에서, 당신에게 묻는다.

나는 정말 마음이 아니라, 마음을 바라보는 자인가? 

나는 그 감정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바라보고 있는가?

 


👉 다음 글 보기:
감정도, 생각도 사라진 그 너머가 궁금하다면 → 《마지막 의식의 경계, 사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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