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가 철학 시리즈 | 바가바드 기타: 니슈카마 카르마:무욕의 행위 (2편)
결과에 마음이 먼저 달려간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결과부터 떠올린다.
시험 성적, 연봉 인상, SNS 반응, 인정받을 가능성…
시작도 전에 머릿속은 “이걸 하면 나에게 어떤 이익이 있을까?”라는 계산으로 가득 찬다.
그래서 행동하기 전에 이미 마음이 지치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쉽게 무너진다.
결과가 좋으면 기분이 들뜨고, 기대보다 부족하면 자책과 열등감이 따라온다.
행위는 사라지고, 결과만 남는 삶.
바가바드 기타는 바로 그 지점을 깊이 통찰한다.
니슈카마 카르마란 무엇인가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कर्मण्येवाधिकारस्ते मा फलेषु कदाचन।karmaṇy evādhikāras te mā phaleṣu kadācana
(카르마뉘 에바디까라스떼 마 팔레쉬 카다아차나)
"너의 권리는 오직 행위에 있고, 결코 그 결과에 있지 않다."(바가바드 기타 2.47)
이 구절은 바가바드 기타 전체에서 반복되는 핵심 철학인
‘니슈카마 카르마(niṣkāma karma)’, 즉 욕망 없는 행위를 대표적으로 설명하는 말로 받아들여져 왔다.
niṣ = 없다
kāma = 욕망, 열망
즉, 욕망 없는 수행, 집착하지 않는 실천을 뜻한다.
중요한 건,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결과에 대한 욕망을 내려놓고 행위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욕망이 생기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미래에 가 있고,
현재의 행위는 그저 수단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니슈카마 카르마는 지금 이 순간, 자기 존재 전체를 걸고 행위하는 법을 가르친다.
이것이 바가바드 기타의 핵심 수행 철학이다.
결과를 내려놓는다는 것
많은 사람들이 이 개념을 오해한다.
“그럼 아무 기대도 하지 말고 무기력하게 살라는 말인가요?”
그렇지 않다.
니슈카마 카르마는 무기력이나 체념이 아니라, '의식의 훈련'이다.
결과를 기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결과에 사로잡히지 않는 태도를 훈련하는 것이다.
이것은 쉽게 얻어지는 평정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치열하게 몰입하고,
행위 자체에 생명을 불어넣을 때 가능한 상태다.
우리는 결과로 자신을 판단한다
오늘 하루, 나는 얼마나 행동했는가보다
얼마나 ‘성과’가 있었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 결과가 기준이 되어 자존감이 요동치고,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쉽게 무너진다.
누군가에게 친절한 말을 했더라도,
그 반응이 미지근하면 괜히 후회하게 되는 마음.
그것이 바로 결과 중심의 사고 구조다.
하지만 크리슈나는 말한다.
삶은 ‘결과의 총합’이 아니라, ‘의식의 흐름’으로 구성된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의식적으로 행위하라.
싸움의 한가운데서도 중심을 지키는 것
아르주나는 싸우기 싫었다.
죽이고 죽는 싸움 속에서, 그는 도덕과 감정 사이에서 무너진다.
그는 말한다.
“나는 승리를 원하지 않는다. 이런 전쟁에서 무슨 기쁨이 있겠는가?”
크리슈나는 말한다.
“행위는 네 몫이지만, 결과는 신의 몫이다.”
“너는 전사로 태어났다면, 전사로서의 길을 조용히 걸어라.”
그는 아르주나에게 ‘무엇을 원하느냐’보다
‘지금 너의 자리는 어디인가’를 자각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냉정하거나 무심한 충고가 아니다.
그것은 삶이 주어진 이에게,
‘해야 할 일을 맑은 의식으로 수행하라’는 가르침이다.
바로 그 상태가 니슈카마 카르마, 요가적 행위다.
나의 행위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행위는
정말 나의 내면에서 우러난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평가, 결과, 인정을 얻기 위한 연기가 아닌가?
우리는 종종 행위 자체보다, 그 행위가 남에게 어떻게 비칠지를 더 신경 쓴다.
그래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성과가 있어 보이기 위해’, ‘실패하지 않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행동하게 된다.
그 순간, 의식은 현재에서 멀어지고,
행위는 본질을 잃고 연기가 된다.
하지만 크리슈나는 성공이 아닌 깨어 있음을 말한다.
바가바드 기타는 ‘결과를 내려놓는 법’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다.
“왜 살아가는가”, “무엇을 의식하며 행위하는가”를 끊임없이 묻는 책이다.
그것은 집착을 없애는 기술서가 아니라,
집착 없이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나’를 회복하는 안내서다.
현실을 선택한다는 것
삶은 언제나 명확하지 않다.
누구나 원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지만,
현실은 대부분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을 먼저 요구한다.
어떤 사람은 육체노동으로 몸을 소진하고,
어떤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꿈꾸지만 계속 뒤로 미룬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서 흔들리며 살아간다.
예를 들어 어떤 이는
오랫동안 몸을 쓰는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던 중, 언젠가 자신이 움직이지 않아도 수익이 들어오는 삶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고,
블로그나 콘텐츠를 시작해보려 했다.
하지만 일과 병행하는 것은 체력적으로 불가능했고,
매번 지쳐서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그는 생각을 바꿨다.
지출을 최대한 줄이고, 잠시라도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기로.
그 시간만큼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고,
다시 생계가 급해질 때는 최소한의 일만 하며 균형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회피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의식적인 선택이고, 요가적인 행위다.
바가바드 기타가 말하는 니슈카마 카르마는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욕망과 집착 없이 의식적으로 수행하라’는 가르침이다.
그 일이 생계든, 글쓰기든, 배달이든
그 자리에 깨어 있는 마음을 가져오는 것.
그것이 요가다.
✍ 니슈카르마는 묻는다
나는 지금 어떤 결과를 기대하며 행동하고 있을까?
그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나는 얼마나 흔들릴까?
혹시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을
누군가의 인정이나 보상이 없다면 계속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정말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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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전쟁터에서 요가를 말하는 이유 – 삶과 고통, 수행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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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나는 나의 일을 알고 있는가 – 스바다르마, 나의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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