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가 철학 시리즈 | 게란다 삼히타: 삶으로 전해지는 요가의 길 (1편)
🧘 요가, 혼자 배워도 괜찮을까?
우리는 종종 유튜브를 켜고, 책을 펼치고, 홀로 수련한다. 그러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스승 없이 요가를 수련해도 정말 괜찮을까?”
게란다 삼히타는 그 질문에 오래된 방식으로 대답한다.이 고전은 요가의 시작을 이렇게 말하며 문을 연다:
bahuśākhaṃ śāstram etat samāsena mayocyate | guru-vākyaṃ samāśritya yogaṃ sādhanam eva ca (1.4)
(바후샤캄 샤스트람 에따뜨 사마세나 마요쥬차떼 구루 | 박얌 사마쉬리띠야 요감 사다남 에바 짜)
“요가는 수많은 가지를 가진 방대한 가르침이지만,나는 그것을 간결히 전하겠다. 스승의 말에 의지하여 요가는 수행되어야 한다.”
스승이 없으면 요가를 할 수 없다는 말일까?꼭 그렇지만은 않다. 하지만 고전은 분명히 말한다. 요가는 혼자 읽고 빠르게 습득하는 기술이 아니라,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어떤 감각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여운, 삶의 파장이다.
지식은 머리에서 머리로 흐르지만, 요가의 울림은 말 없이도 마음에서 마음으로 스며든다.
이 말은, 누군가의 존재에서 우러나오는 삶의 태도와 에너지가또 다른 존재에게 영향을 주는, 말 너머의 깊이를 말한다.
그것은 단순한 정보나 팁이 아니라,몸과 마음으로 요가의 가르침을 살아낸 사람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진동’ 같은 것이다.
🧘 빠르게 배우는 시대, 요가는 왜 다를까?
우리가 지식을 배우는 방식은 빠르고 똑똑하다.검색하고, 정리하고, 결과를 빠르게 내는 방식에 익숙해 있다. 하지만 요가는 그런 방식과 다르다. 요가는 머리가 아니라 몸과 의식을 변화시키는 느린 길이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시대는 점점 빨라지겠지만, 요가는 삶을 천천히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에 그 본질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게란다는 말한다.이 길은 누군가의 삶이 또 다른 삶에게 천천히 전해지는 과정이라고. 즉, 단순히 ‘지식을 말해주는 자’가 아닌, ‘진리를 살아내는 자’가 전하는 것이다.진리를 살아내는 사람은 굳이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그렇게 살아가고, 그 삶에서 자연스럽게 울림이 전해진다.
🧘 일곱 단계의 여정은 어떻게 전해지는가?
śuddhiḥ, dṛḍhatā, sthairyaṃ, daivī sampat, pratyakṣa, dhyāna, samādhiḥ | sapta sādhana-yogāḥ syuḥ guru-vākya-samudbhavāḥ
(슛디히, 드리다타, 스타이리얌, 다이비 삼팟, 프랏약샤, 디야나, 사마디히 | 삽따 싸다나 요가하 스유후 구루-박야-사무드바바하)
“정화, 안정, 견고함, 신성한 자질, 직관적 체험, 명상, 삼매 —이 일곱 가지 수행은 스승의 말씀에서 비롯된다.”
🧘 '구루'는 누구인가?
여기서 말하는 ‘구루(guru)’는 단지 지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아니다.산스크리트어로 guru는 gu(어둠) + ru(제거), 즉 어둠을 걷어내는 자이다. 단순히 지식을 말하는 자가 아니라, 그 지식을 행동으로 살아내는 자, 그 삶 자체로 ‘무지’를 밝히는 존재이다.
하지만 지금 시대의 우리는 그런 구루를 만나기 어렵다.
예전처럼 삶 전체를 함께하며 가르침을 주는 존재를 가까이서 경험하기 어렵고, 진리를 몸으로 살아낸 사람보다 말로만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더 쉽게 눈에 띄기 때문이다. 빠르고 즉각적인 정보가 넘치는 시대일수록, 깊고 천천히 스며드는 삶의 파장을 지닌 구르는 더욱 찾기 힘들어진다. 그렇다면 요가는 불가능할까? 스승을 직접 만나기 힘든 시대라면, 우리는 요가의 길에서 멀어진 걸까? 그렇지 않다.
🧘 지금, 우리에게 요가는 어떻게 전해지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그 파장을 전수받고 있다.깊이 있는 문장 하나, 감동을 준 영상, 묵상 중 떠오른 통찰—이 모든 것이 지금의 우리에게 구루가 되어줄 수 있다.
중요한 건 ‘전달의 형식’이 아니라 ‘전해지는 깊이’이다. 누군가의 말이 내 안에서 살아 숨 쉬기 시작할 때, 그 말은 내 삶의 일부가 되고, 요가는 이미 나를 통해 살아 움직이고 있다.
☯ 삼매는 어떤 상태인가?
그 여정의 끝, 삼매(samādhi)는 무엇일까.
그것은 ‘나’라는 자의식과 대상의 경계가 완전히 사라지는 상태이다.
예를 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무언가에 깊이 몰입한 적이 있다면—
그것이 삼매의 시작일 수 있다.
‘내가 본다’는 생각도, ‘무언가를 하려는’ 의지도 모두 멈추고, 오직 존재만이 남는 고요한 상태. 마음의 파동이 잦아들고, 나와 세계가 하나가 되는 그 순간. 요가는 그 삼매를 향해, 정화와 명상, 내면의 변화로 나아간다.
🧘 오늘, 삶 안에서 수련을 발견해보자.
- “스승 없이 혼자 해도 될까?”라는 불안함이 들 때,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보자:→ “지금 내 마음을 울리는 이 문장, 이 영상, 이 순간이 나의 스승일 수도 있어.”
- 요가는 시작이 어렵지 않다.→ 단 5분이라도, 조용히 숨을 바라보는 시간이면 충분하다.→ 그 시간이 쌓이면, 그것이 곧 요가가 된다.
- 꼭 완벽한 자세를 하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건 의식을 그 자세에 데려가는 것, 즉 '지금 여기에 있는 나'를 느끼는 일이다.
- 요가를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면,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라:→ “나는 지금 내 몸과 마음을 진심으로 돌보고 있는가? 그 질문 자체가 요가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게란다 삼히타는 조용히 속삭인다.
“요가를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말하는 자의 말 너머를 보라. 그의 삶을 보라.”
그의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보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라. 말은 흉내 낼 수 있지만, 삶은 속일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문득 깨닫는다. 지금 이 순간, 한 문장에 가슴이 요동치고, 어느 영상의 목소리에 마음이 울릴 때, 그 파장은 이미 내 안에서 요가가 시작되고 있다는 신호라는 걸.